오늘은 마지막으로 박기순 선생님의 인터뷰를 올립니다. 박기순 선생님은 스피노자를 중심으로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을 연구하고 계십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선생님은 알튀세르의 제자였지만 이후 알튀세를 강하게 비판한 자크 랑시에르와 알튀세르의 관계를 다룰 예정이신데, 이 인터뷰를 통해 박기순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알튀세르와 랑시에르의 단절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기순 서울대 미학과와 동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4대학에서 「스피노자에서 존재의 역사성과 기호의 정치」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질 들뢰즈의 『스피노자의 철학』, 도미니크 르쿠르의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랑시에르에서 미학과 정치』 등의 논문을 썼다.

박기순 인터뷰
알튀세르와 랑시에르, '주체'로부터 갈라지는 두개의 선

Q. 지금까지 어떤 연구를 해오셨는지, 현재 어떤 연구(활동)를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대학 시절에는, 당시의 많은 학생들이 그랬듯이, 맑스주의에 관련된 공부를 했다. 그 이후 대학원에서, 현대 프랑스철학자들(알튀세르, 푸코, 데리다 등)을 읽기 시작했고, 석사논문으로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에 대해서 썼다. 바슐라르로 나를 인도했던 사람이 알튀세르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스피노자와 17세기 철학을 공부했고, 스피노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주로 스피노자, 스피노자와 현대 철학의 관계, 프랑스 현대 철학 및 미학을 연구하고 있다.

Q.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알튀세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또는 알튀세르를 처음 공부할 당시의 느낌 같은 것들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알튀세르를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반,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 이후, 맑스주의 이론사 전반을 검토하는 연구작업을 할 때였다. 맑스주의의 위기를 사유했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했던 맑스주의자 알튀세르.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당시에 알튀세르주의자이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맑스주의 내에서 맑스주의를 극복하고자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Q. 지금 한국에서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연다거나, 알튀세르를 재조명하는 것의 의미, 알튀세르 사유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알튀세르로 되돌아가기(Return to Althusser), 여기에는 여러 이유와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 그만큼의 거리를 가지고 그의 사상 자체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도 의미가 있을 것이며, 그의 철학이 끼친 영향들의 흔적을 드러내는 작업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가 오늘날 알튀세르를 다시 읽자고 권한다면, 그것은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그의 놀라운 철학적 통찰들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체계의 철학자라기보다는 통찰의 철학자이다. 그가 한 시대에 갇혀 있지 않은 영원의 철학자인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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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알튀세르와 랑시에르’라는 주제의 발표를 맡아 주셨습니다. 랑시에르는 알튀세르의 제자였지만 곧 알튀세르에 반발해 그를 비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랑시에르가 알튀세르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이 어디인지, 그것이 이후 랑시에르 연구의 어떤 측면을 이루었는지 궁금합니다.

랑시에르(좌측 사진)의 알튀세르 비판은 그의 엘리트주의를 향해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 이 비판은 알튀세르에서 ‘주체’ 개념의 소멸에 대한 비판이다. 랑시에르의 이후의 이론적 행보, 그리고 그가 현대 프랑스 철학의 지형 내에서 갖고 있는 위치, 한마디로 그의 사상의 고유성은 이 주체 개념을 매개로 확연하게 드러난다. 『프롤레타리아의 밤』, 『무지한 스승』 등은 랑시에르의 알튀세르와의 단절의식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Q. 향후 어떤 연구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현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17세기 철학을 중심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비교연구하는 것이 큰 틀을 구성한다.


2010/08/20 11:12 2010/08/20 11:12

오늘은 포스트식민주의 및 서발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 안준범 선생님의 인터뷰를 올립니다. 이 인터뷰는 현대의 ‘역사학’이 ‘알튀세르’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상가의 영향을 어떤 효과 속에서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이와 관련해 안준범 선생님은 앞으로 어떤 활동 계획을 세우고 계신지를 엿볼 수 있는 인터뷰입니다.

안준범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발턴 역사 개념의 형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 이론 저널 『트랜스토리아』 편집위원, 『트리컨티넨탈 총서』(울력) 기획위원이다. 현재 자크 랑시에르의 『역사의 이름들』(울력)과 디페쉬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공역, 그린비)를 번역하고 있다.

안준범 인터뷰
알튀세르와 서발턴, 역사학의 경계를 탈구축하기

Q. 지금까지 어떤 연구를 해오셨는지, 현재 어떤 연구(활동)를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관심을 기울여 온 주제는 ‘서발턴 연구’의 형성과 전개를 규정한 맥락들의 지성사라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는 “창안”의 주체들을 서술하는 역사학(들) 고유의 ‘언어’를 해명하는 것입니다.

Q.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알튀세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또는 알튀세르를 처음 공부할 당시의 느낌 같은 것들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시절 어떤 이들을 따라 맑스주의의 위기와 그 구성적 모순에 대해, 또 그것의 전화에 대해 고민하면서 알튀세르와 해후했습니다. ‘윤선생’의 글들을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읽으면서 만났던 알튀세르를, 풍문과 전언으로만 접하던 그를 직접 읽고 싶었고 여전히 읽고 있는 중입니다.

Q. 지금 한국에서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연다거나, 알튀세르를 재조명하는 것의 의미, 알튀세르 사유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라는 그릇을 넘는 질문인 듯…….

Q. 얼핏 보면 알튀세르와 역사학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알튀세르의 이론이 역사학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런지, 그리고 그것이 ‘포스트식민주의’ 및 ‘서발턴 연구’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알튀세르의 문제설정과 개념에 근거하여 연구 작업을 수행했던 역사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론이 분과학문으로서의 역사학과 ‘불화’하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발턴 연구 집단’의 역사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역사학의 경계를 탈구축해 가고 있는 일군의 역사들에게 알튀세르는 언제나 이미 이론적 준거입니다. ‘포스트식민주의’와의 연관은 이 ‘포스트식민주의’를 어떻게 자리매김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논자에 따라 알튀세르는 ‘포스트식민주의’ 형성의 불회귀점이 되지요.

Q. 향후 어떤 연구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우선은 역사학 본연의 텍스트들을 이론적으로 읽는 작업을 구상 중이고요. 여건이 마련된다면 이른바 알튀세르 효과가 라틴아메리카나 이탈리아 등지에서 발현되는 양상들을 조사하는 것이나, ‘프랑스 마오주의’의 순환을 재조명하는 것 등을 시도하고 싶습니다.

2010/08/19 00:54 2010/08/19 00:54

오늘은 김정한 선생님의 인터뷰을 올립니다. 김정한 선생님은 이번 심포지엄에서 ‘알튀세르와 포스트맑스주의’라는 주제의 발표를 맡아 주실 예정입니다. 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를 중심으로 한 포스트맑스주의는 알튀세르 사상의 일부 측면을 계승하고, 나아가 그 측면을 더욱더 밀고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정한 선생님의 발표와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 측면이 무엇인지 좀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김정한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선생님 문제의식의 일단을 보여 주는 논문, 「어네스토 라클라우: 적대와 헤게모니」라는 논문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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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 서강대 정치학 박사.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원. 서강정치철학연구회 연구원. 지은 책으로 『대중과 폭력』,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폭력의 세기』, 『혁명가: 역사의 전복자들』(공역)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권력은 주체를 슬프게 한다: 91년 5월 투쟁 읽기」, 「대중운동과 민주화: 91년 5월 투쟁과 68년 5월 혁명」, 「현실 민주주의와 정치적 행위」, 「민주화세대의 역사적 좌표」, 「5‧18 광주항쟁의 이데올로기 연구」, 「세계 경제위기와 파시즘」, 「5‧18 광주항쟁에서 시민군의 주체성」, 「벌거벗은 생명의 윤리」, 「어네스토 라클라우: 적대와 헤게모니」, 「5‧18 광주항쟁 이후 사회운동의 이데올로기 변화」 등이 있다.

관련 글
어네스토 라클라우 : 적대와 헤게모니

김정한 인터뷰
'맑스 효과'는 '알튀세르 효과'로 대체, 보충되어야 한다

Q. 알튀세르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계신지,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래 접고 있던 ‘서강정치철학연구회’ 세미나를 몇 달 전에 다시 시작했다. 친구가 많이 도와 줘서 아감벤의 책들을 조금씩 읽었고, 지금은 발리바르의 신간인 『우리, 유럽의 시민들?』을 읽고 있다. 앞으로 ‘현대 민주주의 정치철학’이라는 느슨한 제목으로 다양한 지적 흐름들을 따라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젝의 책들을 늘 재밌게 읽어서 ‘난곡연구소’ 세미나에도 다녔는데, 이상하게 세미나가 있는 날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자꾸 생겨 지금은 당분간 쉬고 있다.

Q.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알튀세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또는 알튀세르를 처음 공부할 당시의 느낌 같은 것들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돌아가신 고(故) 정운영 선생의 경제학 수업을 대학 2학년(1990년) 때 수강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사실 ‘정운영’이 누군지 잘 몰랐고, 가까운 선배들의 강력한 추천에 호기심이 생겨서 들었던 것 같다. 정운영 선생의 ‘카리스마’는 단단했고 강의가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나는 뭔가 계속 헤매고 있었는데, 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 “아, 맑스주의가 이런 거구나” 하는 최초의 깨달음이 있었고 매우 놀라웠다. 다른 과목들처럼 형편없는 학점을 받았지만, 그해 겨울부터 맑스주의에 관한 책들을 좀 본격적인 느낌으로 읽게 되었는데, 당시에 맑스주의를 공부하면서 알튀세르를 만나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곧 믿음직한 선배가 이끄는 세미나에 들어갔고 레닌과 함께 알튀세르를 접하게 되었다. 물론 어려웠고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몇몇 글들의 일부는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듯이 명쾌했으며 무엇보다 뛰어난 논리가 감탄스러웠다.

Q. 지금 한국에서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연다거나, 알튀세르를 재조명하는 것의 의미, 알튀세르 사유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알튀세르 사후 20주년에 특별한 의미는 없을 테고, 어쩌면 심포지엄을 여는 일 자체가 어떤 새로운 의미를 형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세계 자본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맑스가 유행처럼 불려나오는 시기가 있는데, 2007~2009년 금융위기 때에도 그랬다. 이를테면 ‘맑스 효과’가 일어나는 정세가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가 선언했던 ‘맑스주의의 위기’는 아직 돌파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고, 이 때문에 ‘맑스 효과’가 단순히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것으로 귀결한다면 별로 긍정적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맑스 효과’는 ‘알튀세르 효과’로 대체보충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알튀세르는 역사적 맑스주의의 주요 교차로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순수하고 진정한 맑스(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알튀세르를 재조명하고 역사적 맑스주의를 재성찰함으로써 ‘맑스주의의 위기’를 돌파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Q. 발표 주제가 ‘알튀세르와 포스트맑스주의’입니다. ‘포스트맑스주의’란 얼핏 모호한 범주처럼 보이는데,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포스트맑스주의’의 공통적 특징은 무엇인지, 그리고 ‘포스트맑스주의’는 알튀세르의 어떤 측면을 계승했고, 어떤 측면에서 그와 갈라지는지 궁금합니다.
어디선가 알튀세르는 철학함이란 ‘구획선 긋기’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정치와 과학(이론) 사이에서 어떻게 구획선을 긋느냐에 따라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포스트맑스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는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쓴 라클라우와 무페인데, 그 바탕에는 알튀세르의 ‘과잉결정’ 개념이 놓여 있다. 말하자면 포스트맑스주의는 알튀세르가 그은 수많은 구획선들 중에서 하나를 쭉 밀고 나간 셈이다. 라클라우와 무페는 과잉결정 개념을 가공하여 반본질주의를 내세우고, 이를 통해 계급주의, 국가주의, 경제주의, 중앙집중식 혁명론 등을 비판하면서, 다양한 신사회운동들을 등가적으로 결합하는 지속적인 민주화 과정(진지전)을 제창한다. 이것이 (계급투쟁이 아니라) 헤게모니투쟁으로 이루어지는 ‘다원적 급진민주주의 전략’이다. 여기서 고전적 맑스주의의 핵심적인 운동세력인 노동자계급, 노동자운동은 더 이상 특권적인 위상을 갖지 않는다. 물론 알튀세르라면 이런 전략을 전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지젝은 라클라우를 비판하면서 계급투쟁의 예외성(중심성?)을 다시 주장하는데, 이는 알튀세르의 ‘최종심급에서의 경제 결정’ 개념을 다른 방식으로 쭉 밀고 나가는 인상을 준다. 이런 쟁점들을 이해하려면 알튀세르의 문제의식과 그가 그어 놓은 구획선들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Q.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당분간 세미나에 집중하면서 저 멀리 앞서가는 이론적 정세를 뒤좇으려 한다. 그리고 아직 구상에 불과하지만, 온·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세미나 팀들과 일상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일종의 ‘포털 블로그’를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세미나연합’(seminar association)이라는 화두를 갖고 내가 속해 있는 모임들에서 틈나는 대로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사는 게 바쁘고 몸이 느려서 진척이 더디다. 약 10년 전에 ‘91년 5월 투쟁 10주년’을 함께 준비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일종의 동인처럼 모여 있는 ‘대안지식연구회’에서 몇 년 전에 ‘지식인의 현장 ― 세미나를 찬양함’이라는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꼭 그처럼 살 수는 없어도 대략 비슷하게는 살려고 노력하고 싶다.
2010/08/18 12:06 2010/08/18 12:06

오늘은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문제’라는 발표를 맡아 주신 진태원 선생님의 인터뷰를 올립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진태원 선생님은 그간 알튀세르, 발리바르, 데리다 등 대표적인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의 저작을 더 이상은 불가능할 정도의 엄격함을 가지고 번역·소개해 오신 연구자이시며, 또한 이번 심포지엄의 기획자이기도 하십니다. 앞으로도 무시무시한(^^;) 번역서들 및 저서들을 꾸준히 출간하실 예정인데, 이 인터뷰를 통해 선생님의 향후 계획, 알튀세르와의 만남, 오늘날 ‘죽은 개’ 취급을 받는 변증법과 알튀세르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등을 알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인터뷰와 더불어 선생님의 글 두 편, 「마르크스주의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캉귈렘-스피노자」을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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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원 연세대학교 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서양근대철학』(2001, 공저), 『라깡의 재탄생』(2002, 공저) 등이 있고, 『에코그라피』(2002, 공역), 『법의 힘』(2004), 『스피노자와 정치』(2005), 『마르크스의 유령들』(2007), 『헤겔 또는 스피노자』(2010), 『우리, 유럽의 시민들?』(2010) 등을 옮겼다.

관련 글 마르크스주의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캉귈렘-스피노자

진태원 인터뷰
알튀세르, 헤겔 변증법과 맑스 변증법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Q. 지금까지 어떤 연구를 해오셨는지, 현재 어떤 연구(활동)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해온 연구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연구였는데, 조만간 박사학위 논문과 그동안 스피노자에 관해 썼던 논문집이 출간되면서 잠정적인 결산이 이루어질 것 같다. 둘째는 알튀세르와 알튀세리엥들에 대한 연구다. 지금까지 공부를 해오면서 가장 많은 지적인 빚을 지고 있는 철학자가 알튀세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심포지엄과 공동 논문집 출간, 『『자본』을 읽자』의 번역, 그리고 내년쯤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알튀세르에 관한 책 등을 통해 얼마간 그 빚을 갚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은 데리다를 비롯한 해체론에 관한 연구다. 지금까지는 주로 데리다의 저서들을 번역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몇 가지 글을 써볼 생각이다.
현재 제일 몰두하고 있는 작업은 발리바르를 비롯한 현대 정치철학자들의 저서를 번역하고 연구하는 일이다. 발리바르의 『우리, 유럽의 시민들?』이 지난 5월 출간됐고, 『정치체에 대한 권리』와 『폭력과 시빌리테』도 곧 나올 예정이다. 랑시에르의 『불화』도 번역이 거의 끝나가고 있기 때문에 늦어도 올해 안에는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린비 출판사에서 내는 ‘프리즘 총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도 현재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좋은 책은 많은데 막상 능력 있는 옮긴이를 구하기는 쉽지 않고, 국내 필자의 좋은 원고를 발굴하기는 더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사정이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 밖에 몇 가지 소소한 작업들이 더 있는데, 여기서 굳이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Q.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알튀세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또는 알튀세르를 처음 공부할 당시의 느낌 같은 것들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알튀세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1989년)였다. 그 전까지는 구조주의 철학자, 역사를 부정하고 주체를 제거한 철학자라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당시에는 헤겔을 비롯한 헤겔 맑스주의 철학자들(루카치, 마르쿠제 등)의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이런 악명을 지닌 철학자의 책을 굳이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알튀세르를 읽게 된 계기는 그 당시 번역된 발리바르의 『역사유물론 연구』를 인상적으로 읽게 된 이후다. 이 책은 당시의 나에게는 이를테면 하나의 계시와도 같은 책이었다. 발리바르의 이 책은 헤겔 맑스주의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웠던 맑스주의 역사의 이런저런 측면들을 이해하게 해주었고, 맑스 및 맑스주의가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제자의 책을 감동 깊게 읽었으니 당연히 스승의 책들이 궁금해졌고, 그래서 당시에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영역본 책들을 구해 읽게 되었다. 그리고 알튀세르에 관한 이런저런 소문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또 당시는 데리다가 마약중독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문(회의주의자, 상대주의자, 개인주의자, 20세기의 소피스트 같은 식의 언급들은 말할 것도 없고)이 국내 학계 및 대학 사회에 제법 그럴듯한 사실로 회자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알튀세르와 거의 비슷한 시기(1990년)에 데리다를 처음 읽게 되었는데, 이런 소문 역시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지금도 이런저런 이론가나 사상가에 대한 소문이나 저널리즘식 평가는 거의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Q. 발표 주제가 ‘알튀세르와 변증법’입니다. 일반적으로 알튀세르는 헤겔의 변증법과 맑스의 변증법을 세심하게 구분하려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이 주목하시는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관계, 혹은 ‘알튀세르의 변증법’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관계, 혹은 ‘알튀세르의 변증법’이란 무엇인지” 설명하려면 논문 한 편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니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알튀세르 사상의 핵심 중 하나는, 질문에서 말했듯이 헤겔의 변증법과 맑스의 변증법을 구별하는 것이었으며, 이 주제가 중요한 만큼 그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번 심포지엄에서 이 주제를 다루려고 하는 까닭은 우선 변증법이라는 주제가 이제는 거의 ‘죽은 개’ 취급을 받는 상황이 적지 않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은 사회적 갈등과 적대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이론틀 중 하나다. 따라서 변증법보다 더 낫거나 적어도 그것을 대체할 만한 이론틀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이나 적대에 대한 설명을 어렵게 하거나 아니면 매우 빈곤하게 할 수 있다.
둘째, 변증법에 대한 알튀세르의 관점은 초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남아 있지 않았으며, 이러한 관점의 변화, 또는 상이한 관점들의 경합 내지 교차는 알튀세르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의미 있는 쟁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령 변증법에 대한 알튀세르의 관점과 말년의 불확실성의 유물론 내지 마주침의 유물론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번 던져 볼 수 있다.

Q. 선생님은 현재 알튀세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본』을 읽자』를 번역하고 계십니다. 출간된 지 40년이 지난 이 책이 갖는 현재성이 있다면, 혹은 알튀세르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성을 지니고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알고 싶습니다.
『『자본』을 읽자』는 알튀세르 철학을 대표하는 저작 중 하나다. 이 책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자본』에 관한 가장 깊이 있는 연구 중 하나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이 출간된 지 14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이 책은 『자본』을 이해하는 데서 여전히 필수적인 참고 문헌으로 남아 있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성격과 한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자본』을 읽자』는 자본주의를 좀더 깊이 있게 사고하고 분석하기 위한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을 읽자』의 또 다른 의미는 중요한 철학책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자본』을 철학적으로 사고하려는 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에 속한다. 『자본』을 철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것은 『자본』에서 사용된 주요 범주들을 분석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자본』에 함축된 여러 철학적 주제, 가령 가치, 물신숭배, 역사성, 주체화, 사회성, 변증법, 공산주의 같은 주제들에 대한 탐구를 뜻할 수도 있다. 『『자본』을 읽자』의 중요성은 주요 범주들에 대한 분석이나 철학적 주제에 대한 주석에 그치지 않고 맑스의 『자본』의 기획을 맑스주의적으로 좀더 심화하고 정정·발전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20세기 전반기에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이 있었다면, 20세기 후반기에는 『『자본』을 읽자』가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루카치가 없었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나 그 밖의 다른 비판 맑스주의가 존재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알튀세르와 『『자본』을 읽자』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상계를 주름잡는 여러 이론가들, 가령 랑시에르, 바디우, 발리바르, 지젝, 네그리, 라클라우와 무페 등과 같은 사람들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본』을 읽자』의 의의는 이런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Q. 향후 어떤 연구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1번에서 말했던 작업 이외에 두어 가지 저술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하나는 데리다 철학을 유물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해체라는 유물론』이라는 저서를 쓰는 계획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현대 정치 이론들을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해 보는 계획이다.

2010/08/16 10:51 2010/08/16 10:51

‘미학으로 생산되지 않는 미학: 알튀세르 예술론의 어떤 (불)가능성’이라는 발표를 맡아 주신 최정우 선생님의 인터뷰를 올립니다. 최정우 선생님은 현재 음악(연극음악과 무용음악, 그리고 밴드활동까지!)과 글쓰기, 번역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아마도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선생님의 학문·예술 활동에 알튀세르가 어떤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인터뷰와 더불어 선생님이 쓰신 두 편의 글을 함께 올립니다. 두 편 모두 알튀세르 사유의 ‘어떤 (불)가능성’을 집요하게 탐색하는 글입니다.
<관련 글 보러가기>
자서전을 위반하는 자서전: 알튀세르의 서명과 자서전의 (불)가능성
음악의 바깥, 바깥의 연극 - 알튀세르의 ‘유물론적’ 연극론과 연극음악의 ‘소격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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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에 태어났다. 작곡가, 비평가. 서울대학교 미학과와 같은 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했다.
2000년 『세계의문학』에 비평을 발표하여 등단했고,『현대 정치철학의 모험』(공저),『아바타 인문학』(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바르트와 기호의 제국』,『자유연상』,『거세』,『사도마조히즘』,『뉴 레프트 리뷰 1』(공역),『레닌 재장전』(공역) 등의 책을 번역했다.
연극과 무용을 위한 무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며, 음악집단 Renata Suicide를 이끌고 있다. 현재 계간지 『자음과모음』의 편집위원이다.

최정우 인터뷰
알튀세르, 예술과 정치의 만남

Q. 알튀세르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계신지,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기존의 이상적/역사적 ‘코뮤니즘’과는 다른 형태를 띤 ‘공동체’(community)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이론적 계보는 바타유, 블랑쇼, 낭시, 아감벤 등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느슨한 선’인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혹은 다각적으로 논의한 공동체(들)의 모습은 어떤 것이며 또한 그것은 어떤 미래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현재 나의 가장 큰 이론적/실천적 관심사이다. 그러한 공동체는 어떤 ‘불가능성’을 자신의 존재/부재 조건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하고 개별적이면서도 매우 전복적이며 집단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전체성으로 통합되지 않으면서도 개별적인 것으로 전락하지 않는 독특성(singularity)의 총체성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문제가 이러한 관심의 중핵이다. 현재 문예 계간지 『자음과모음』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고, 철학, 문학, 음악, 연극 등에 관해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올해 출간을 목표로 첫 비평집과 연극음악에 대한 책을 함께 다듬고 있는 중이다.

Q.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알튀세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또는 알튀세르를 처음 공부할 당시의 느낌 같은 것들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의 첫 국역본(돌베개, 1993)을 지극히 ‘우발적으로’ 읽게 된 일이 알튀세르와 처음 만나게 된 계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암울한 고등학교 시절, 어설픈 이해와 지난한 독해를 반복하며 읽었던 계간지 『이론』은 내게 맑스주의의 ‘현재’를 둘러싼 최신의 이론적 동향들을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주었다. 알튀세르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 때마침 출간되었던 윤소영의 『마르크스주의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문화과학사, 1995)는 나의 목마름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다. 그 이후 대학에 들어와 알튀세르의 원전들과 관련 글들을 하나둘씩 읽기 시작했다. 알튀세르는 맑스를 단순히(?) 실천의 입장에서 ‘정치경제학적’으로가 아니라 이론의 맥락에서 ‘철학적’으로 읽는 방법을 내게 제시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러한 ‘독서의 방법’이 별로 새로울 것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알튀세르를 통해 맑스를 하나의 ‘철학자’로 온전히 인식하게 된 것 같다.

Q. 지금 한국에서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연다거나, 알튀세르를 재조명하는 것의 의미, 알튀세르 사유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알튀세르의 ‘유산’ 안에는 그의 이론적 공과(功過), 곧 그가 열정적으로 추구했던 맑스주의 쇄신의 방향과 그가 고통스럽게 부딪쳤던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아포리아들이 함께 들어 있다. 이론과 실천의 영역에서 최근 ‘새삼스럽게’ 주목받고 있는 이른바 ‘정치철학의 귀환’ 안에는, 그러한 알튀세르의 유산에 대한 반성과 회고, 그에 대한 희망과 절망의 흔적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점에 비춰 볼 때 우리는 어쩌면 알튀세르의 이름과 그 유령(들)을 ‘너무도 빨리’ 망각했거나 ‘너무도 늦게’ 소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소 비약적인 비유를 하자면,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반복하는 것과 비슷한 형상으로(혹은 그와 정반대로), 알튀세르 개인의 이론적 행보가 겪었던 좌절과 영광은 일정 부분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 안에서 맑스주의가 걸어 온 길과 어떤 ‘동시성’을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드디어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맑스주의의 위기가! 우리는 이 전혀 새삼스러울 것 없는,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새삼스러울 정도로 유효한 이 탄식의 문장을 또 다시 발음하고 있는 것이다. 곧 우리는 이론적일 뿐만 아니라 정세적인 위치에서도 다시금 알튀세르를 요청하고 또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향후 유물론적 사유의 나아갈 길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관해 알튀세르의 이론은 여전히 많은 점들을 시사하고 있는데, 그가 말년에 정식화했던 우발성 혹은 마주침의 유물론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또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 ‘주체’란 무엇인가, ‘혁명의 무기로서의 철학’이 가능할까 등등(이 모든 질문들에는 ‘여전히’와 ‘새롭게’라는 부사어구들이 동시에 첨부되어야 한다), 이 가장 오래된, 하지만 동시에 아직도 가장 신선한 질문들은 우리가 다시 알튀세르의 이름을 소환할 수밖에 없는 한 이유가 된다. 더불어 맑스 이외에 알튀세르가 주목했던 많은 정치사상가들, 곧 마키아벨리, 스피노자, 몽테스키외, 레닌 등에 대한 그의 글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최근 우리의 정치적 아포리아에 관해 사유할 수 있는 이론적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최근에 최장집 교수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에 필요한 사상은 맑스의 것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친 바 있는데, 맑스와 마키아벨리 둘 모두에 주목했던 알튀세르가 이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개인적으로 상당히 궁금하다).

Q. 우발성의 유물론, 맑스주의 철학, 국가장치 분석 등 알튀세르는 ‘정치’를 사유한 철학자의 이미지가 강합니다(『맑스를 위하여』에 실린 베르톨라치와 브레히트 연극에 관한 노트도 있고, 90년대 문예비평에서 알튀세르 사상이 활용된 바도 있지만 말이지요). 알튀세르 속에 ‘문학예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어떤 유의미성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또 그러한 요소들이 알튀세르의 여러 작업들 속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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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에서 (특히 시와 관련하여) 이뤄지고 있는 예술의 어떤 ‘정치성’에 대한 활발한 논의들은 과거의 것과는 전혀 다른 지형과 맥락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현재의 ‘예술-정치’가 지닌 문제의 틀은 예술이 지닌 정치적 배경과 기원에 대한 분석(예술사회학)도 아니고 예술 안에 잠복해 있는 협의의 정치성에 대한 재발견(참여예술론)도 아니다. 예술을 소진하고 정치를 남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술이 정치와 어떤 방식으로 결합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현재 더욱 첨예한 문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과 관련해 우리는 알튀세르의 연극론을 다시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알튀세르는 직접적으로 예술에 관해 그렇게 많은 글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특히 그의 연극론은 유물론적 연극 혹은 유물론적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여전히 많은 시사점들을 던져 주고 있다. 또한 알튀세르가 브레히트의 연극론을 이야기하면서 말했던 (‘새로운 예술’이 아닌) ‘새로운 실천’의 문제의식은 레닌과 철학에 대한 그의 논의, 더 나아가 철학 그 자체의 역할과 입장에 대한 그의 일반적 논의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공명하고 있으며, 연극적으로는 ‘소격효과’, 정신분석적으로는 ‘이동/전위’, 정치적으로는 ‘자리바꿈’ 등의 의미로 해석되는 ‘déplacement’은 특히 알튀세르의 예술론 또는 그의 사상 전반과 관련하여 새삼 깊이 천착해야 할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알튀세르가 맑스를 독해하는 주요한 방법으로 밝혔던 ‘징후적 독해’는 현대 예술이 그 자신의 표현과 수용 방식과 관련하여 여전히 숙고해야 할 하나의 문제적 방법론으로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 알튀세르를 통해 현대 예술 안에서 ‘당파성’에 관한 논의를 증폭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기도 하다.

Q.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걸로 아는데,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앞에서 밝혔듯이 첫 비평집과 함께 연극음악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내가 몸담고 있는 밴드 Renata Suicide의 정규 1집 앨범에 수록될 곡들을 녹음하고 있다. 또한 지금껏 해왔던 대로 연극과 무용을 위한 무대음악 작곡과 연주 작업도 계속 병행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서 알튀세르의 연극론/예술론은 내게 어떤 예술적/정치적 지침으로 작용한다기보다는 끊임없이 물음들을 생산하는 일종의 질문지로 작동하고 있다. 철학과 예술 사이의 접점과 긴장, 이론과 실천 사이의 왕복과 동요는 알튀세르가 여전히 내게 ‘새삼스럽고도 끈질기게’ 제기하는 문제들이며, 아마도 이는 예술적 실천들이 지속되는 한 내게 ‘창조적 아포리아’들을 계속해서 제공할 것 같다.

2010/08/11 14:35 2010/08/11 14:35

세 번째 발표자 인터뷰는 서용순 선생님의 인터뷰입니다. 서용순 선생님께서는 ‘알튀세르와 바디우’라는 발표를 맡아 주실 예정입니다. 이 인터뷰는 ‘공산주의적 주체성’이라는 테마를 두고 알튀세르와 ‘주체의 철학자’ 바디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소개할 선생님 발표의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 주는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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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순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여러 가지 이론서를 탐독하다가 프랑스 철학에 매료되어 좀더 깊이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그곳에서 많은 고민을 하며 프랑스의 현대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귀국하여 철학아카데미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를 했고, 현재 세종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철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존재론과 정치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정치와 삶의 문제를 가장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가 있고, 옮긴 책으로 『뉴레프트리뷰』(공역)이 있다.


서용순 인터뷰

알튀세르와 바디우, '공산주의적 주체성'의 계보

Q. 알튀세르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계신지,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사회철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프랑스 현대철학이 제기하는 정치 주체와 공산주의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바디우의 진리 철학을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우리의 정치적 대안에 대해 고민하는 중입니다.

Q.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알튀세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또는 알튀세르를 처음 공부할 당시의 느낌 같은 것들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알튀세르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1980년대 말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했던 시점입니다. 맑스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했던 알튀세르의 철학적 사유는 무척 새로운 것으로 다가왔지만, 당시에는 어떤 맥락에서 그런 문제제기를 했는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사유를 소화하기가 무척 어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막연하게나마 그가 아주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 이후 그의 철학적 사유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어 프랑스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Q. 지금 한국에서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연다거나, 알튀세르를 재조명하는 것의 의미, 알튀세르 사유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알튀세르는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잠깐 인구에 회자되다가 그 열기가 그대로 사그라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날 다시 알튀세르를 조명하려는 시도는 무척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알튀세르 이후의 많은 철학적·정치적 시도들은 상당 부분 알튀세르에게 받은 영감을 통해서 발전한 것이라는 점에서 알튀세르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은 반드시 활성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Q. 바디우와 알튀세르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맑스-바디우, 맑스-알튀세르와 같이 ‘맑스’와의 관계 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바디우와 알튀세르는 어떤 방식으로 맑스와 관계했는지를 토대로, 바디우와 알튀세르가 주고받은 영향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바디우와 알튀세르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주로 주체성에 관한 것인데, 이는 맑스가 출발점에서 갖고 있었던 ‘공산주의적 주체성’이라는 테마와 관계가 있습니다. 알튀세르는 역사를 끌어가는 ‘주체’라는 관념은 확실히 거부하지만, 주체성이라는 테마는 견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튀세르가 가지고 있었던 공산주의적 주체성의 알려지지 않은 테마는 바디우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맑스에서 출발한 19세기적인 공산주의적 주체성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알튀세르가 그토록 맑스주의 철학을 견지하고자 시도했던 것은 철학의 자율성이라는 테마에서 드러나고, 그것이 ‘철학의 종말’에 반대하는 바디우의 노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Q.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다.  
학문적인 활동 이외에 대중 강연이나 일선 운동가들과의 토론과 같은 대중적인 활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고 합니다.

2010/08/11 13:54 2010/08/11 13:54

‘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의 두번째 발표자 인터뷰는 ‘정치의 유물론: 푸코와 알튀세르의 부재하는 대화’라는 제목의 발표를 맡아 주신 서동진 선생님의 인터뷰입니다. 학생 시절 이후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연구를 해오셨는지, 그 과정에서 알튀세르와 어떻게 만나셨는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얼핏 보기에는 대화가 부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알튀세르와 푸코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어디서 갈라지는지에 대한 선생님 생각의 얼개도 접할 수 있는 좋은(^^)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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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진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계간 『리뷰』 편집장, 『당대비평』 편집위원을 지냈고, 대안청소년센터인 하자센터 창립 멤버였으며, 웹진 『컬티즌』을 창간하는 데 참여했다. 현재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당비의 생각』 기획주간을 맡고 있다. 옮긴 책으로 『섹슈얼리티: 성의 정치』가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누가 성정치학을 두려워하랴』, 『록, 젊음의 반란』, 『디자인 멜랑콜리아』, 『혁명의 문화사 ― 프랑스 혁명에서 사빠띠스따까지』(공저), 『문화읽기: 삐라에서 사이버문화까지』(공저),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민주화 20년, 민주주의는 누구의 이름인가』(공저), 『왜, 지금, 청소년? ― 하자센터가 만들어지기까지』(공저),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공저), 『한국의 디자인 02: 시각문화의 내밀한 연대기』(공저), 『미노타우로스의 눈』(공저),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탄생』 등이 있다.

관련 논문: 「신자유주의 분석가로서의 푸코」, 『문화과학』 No.57, 2009.

서동진 인터뷰
여러 개의 얼굴로 출현하는 알튀세르

Q. 어떤 학문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계신지,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공식적인 활동인 셈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교는 디자인과 미술에 관련한 학교이다. 그와 인연이 먼 공부를 한 전력에 비추어 보면 조금 엉뚱한 곳에서 살아가는 셈인데, 나는 내게 이곳이 꽤 괜찮은 서식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미술이나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배우게 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사물과 이미지의 세계에 에워싸여 살고 있으면서도 이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조직하고 상품을 만들어 내며 어떻게 사물 자체를 탄생시키는지 생각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나는 관념의 세계 못지않게 물질적 삶의 세계에 관심을 두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몇 해 전부터 틈틈이 이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그다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일을 빼면 당연히 글을 쓰는 것이 주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체질적으로나 기벽으로서나 학술적인 지식인이지 못해 주로 사회비평적인 저널이나 매체에 글을 싣는 편이다. 그리고 뜻이 맞는 이들과 한 주에 한 번씩 글을 읽고 입씨름을 벌이는 작은 공부모임을 하고 있다. 지금 준비하는 공부는 ‘일상생활의 금융화’란 것이고, 아직은 생각의 밑그림만 그리고 있다.

Q.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알튀세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또는 알튀세르를 처음 공부할 당시의 느낌 같은 것들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마 내 세대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그렇겠듯이 나 역시 서구맑스주의, 네오맑스주의란 이름을 경유하여 알튀세르를 접했다. 아도르노와 벤야민, 그람시, 알튀세르, 풀란차스, 르페브르 같은 이들은 모두 어쩐지 낯설고 또 기름져 보였다. 어쨌거나 맑스-레닌주의자이고자 했던 어린 대학생에게 그 모든 지식은 아류이거나 기껏해야 진짜 혁명적 사고에 접근하기 위해 마지못해 경유해야 했던 위장된 언어였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 맑스주의자가 알튀세르주의자이지 않기는 어려웠던 혹은 그만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알튀세르적 영향과의 긴장 밖에서 사고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그가 굳이 맑스주의자가 아닐지라도 그는 알튀세르의 흔적으로 가득 찬 지역적인 맑스주의와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사회 맑스주의적 지식인운동 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일 사회구성체 논쟁이 미친 영향 때문이었다. 모든 비판적인 연구자나 운동가들은 그 논쟁에 입회하여야 했고 그 엄밀한 뜻에서 입장을 가져야 했다. 이론 안에서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우리는 이미 알튀세르와 해후한 셈이었다. 그것은 알튀세르의 주요한 개념과 그의 이론적, 정치적 영감을 선택했다는 뜻에서이기도 했지만 또한 어렴풋하게나마 ‘이론적 실천’이란 것을 행하고 있다고 자각했다는 뜻에서도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87년과 89년이 찾아왔다. 공산주의가 죽은 개 취급을 당하고 맑스주의가 파면되어야 할 지식이 되었을 때, 많은 이들은 또한 알튀세르에게 돌아가고자 했다. 그 정치적, 사회적 정세가 이미 알튀세르가 선제적으로 대면하고 또 돌파하고자 했던 그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맑스주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였고 관료적 당이 없는 맑스주의적 실천에 관한 것이기도 하였으며, 20세기 절반 기간 동안 스탈린주의라는 미증유의 동면 속에서 자신의 한계와 난점을 사고할 수 없었던 맑스주의를 소생시키는 기획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적어도 내게는 하나의 낯을 한 알튀세르가 없다. 물론 우리는 이제 공산주의 철학자이자 당 활동가였던 알튀세르보다 그 사유의 힘을 모두 거세하고 모든 독성을 제거한 뒤의 알튀세르에 더 익숙해 있다. 이를테면 스튜어트 홀 같은 이를 통해 정착된 자본주의적 삶의 기호학적 코드 즉 이데올로기를 분별하고 비판한 이론가로서의 알튀세르의 초상에 더 친숙하다. 또한 후기구조주의를 통해 청산되거나 극복되어 버린 사고의 계기로서, 즉 사유의 시제(時制)로는 언제나 그 효력이 다한 ‘어제’의 사고가 되어 버린, 묘비명 속의 알튀세르를 마주한다. 이런 정세에서 여전히 알튀세르와 함께한다는 것은 실은 맑스주의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일일 것이다.

Q. 지금 한국에서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연다거나, 알튀세르를 재조명하는 것의 의미, 알튀세르 사유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론가로서의 알튀세르를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알튀세르를 경유하지 않은 채 20세기의 맑스주의를 사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알튀세르의 렌즈를 통해 맑스를 읽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 알튀세르를 재조명한다는 것은 실은 맑스의 사유를 재조명한다는 것과 같은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것이 맑스주의자이든 아니든 모두에게 공통적이란 점이다. 20세기의 맑스주의에 관하여 말하고자 한다면 당연 알튀세르를 경유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채 맑스주의에 관하여 발언한다는 것은 능청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스탈린주의를 통해 황폐하고 빈사상태에 이른 맑스주의적 사고를 다시 가동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그가 던진 모든 물음은 여전히 가치 있고 유효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역사적인 정세에서 또 다른 알튀세르의 모습이 더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알튀세르에 관한 심포지엄을 연다는 것, 그를 읽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 그에게로 되돌아가자고 하는 것, 그 모두가 추문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지만 그의 제자들이었던 발리바르, 랑시에르, 바디우가 한자리에 회합하고 그들에 관한 학술행사를 조직한다면 사태는 다를 것이다. 또는 그 행사의 제목이 최근 바디우가 내놓은 책 제목처럼 ‘공산주의적 가설’이란 이름을 달고 있다면 이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맑스주의를 소비하는 ‘스타일’에 아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우리는 자신의 이론적 스타를 가진 팬들을 만나게 된다. 그는 지젝일 수도 있고 바디우일 수도 있고 혹은 아감벤이나 주디스 버틀러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알튀세르의 팬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어쩌면 난센스처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였고 공산당의 지식인이었던 알튀세르에게 운동과 정치를 자신의 타자로 가지지 않은 급진적인 지식이란 불가능하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사회에서 진보적인 지식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방식은 한국의 자유주의적인 야당지(?!)들이 중계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으레 그렇듯이 ‘씽크탱크’에 속한 전문연구자가 되어 현안 혹은 의제에 대하여 중언부언 발언하거나 아니면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대중매체가 만들어 내는 이슈에 대하여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종류의 활동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시사토크쇼는 시사토크쇼일 뿐이다. 그것은 개념을 생산하는 대신 유행어를 만들어 내고, 조직을 만들어 내는 대신 숭배와 악담의 댓글을 만들어 낼 뿐이다. 독일의 유명한 공산주의자 리프크네히트의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란 유명한 슬로건은, 혹은 마오쩌뚱의 “조사 없이 발언권 없다”는 단언은 그저 멋들어진 선동적인 구호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알튀세르가 늘 강조했듯이 이론에서의 정치를 묻는 것일 터이다. 나는 그런 이론 속에서의 정치를 생각함에 있어 알튀세르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Q. 발표 제목이 ‘정치의 유물론: 푸코와 알튀세르의 부재하는 대화’입니다. 현대 프랑스 철학, 그중에서도 푸코와 알튀세르가 어떤 관련 속에 있는지 말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얼핏 보기에는 평생을 맑스에 천착했던 알튀세르와 맑스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직접적인 언급은 매우 적었던 푸코 사이에는 꽤 큰 거리가 있는 듯 보입니다. 이데올로기의 문제, 국가장치와 주체의 문제 등 주요 논점들에서 두 사람이 어떤 차이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의 큰 얼개이자 물음을 이룬다. 나는 푸코와 알튀세르 사이의 무언의 이론적 대화를 중계하려는 시도를 생각하고 있다. 둘은 전혀 서로를 참조하지 않으면서 혹은 서로에 대한 무지 속에서 대화하는 이론가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 부재하는 대화를 중재하기 위해 우리는 대화를 가능케 하는 화제 혹은 두 학자 모두 좋아했던 용어를 빌자면 토픽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를 자유주의적 국가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근대 국가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집요하리만치 천착했다. 무엇보다 자유주의적인 주권적 법 담론이 표상하는 국가와 대결하고자 분투했다는 점에서 둘은 일치한다. 근대 국가의 계보학을 탐색하기 위한 시도였던 악명 높은 푸코의 ‘통치성’과 관련한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란 역시 오해와 추문에 시달려야 했던 알튀세르의 글 모두 실은 자유주의적 국가를 상대한다. 푸코에게서는 주권적인 권력 개념을 넘어 생권력을 조직하고 운용하는 장치로서의 국가가 문제였다면 알튀세르에게 있어서는 법 이데올로기의 환상을 넘어 개인을 주체화하는 국가장치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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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둘의 기획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다. 푸코는 맑스보다 더 유물론적이고자 했다. 그 어떤 초월적인 심급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집요한 실증성의 이론가인 푸코에게 국가 비판은 권력의 사회물리학, 거칠게 말하자면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어떻게든 정초하지 못하게 하는 관점에 이른다.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은 동일한 외연을 가진다는 푸코의 잘 알려진 내재성의 사유는 결국 정치를 사회적 삶의 통치라는 것으로 닫아 버린다. 그렇다면 자유와 평등이라는 정치적 규범 혹은 이상은 더 많은 행복과 안녕, 건강을 위한 수사에 불과하며, ‘사회문제’와 ‘사회정책’을 제외한다면 정치적 행위를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알튀세르의 사유가 가진 특징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기이한 세 낱말의 조합인 이데올로기-국가-장치와 관련한 것이다. 장치의 이론가란 점에서 알튀세르와 푸코는 일치한다. 지식과 기술, 윤리를 통합한 주체화의 작용을 분석하는 통치성, 즉 행실의 통솔(conduct of conduct)로서의 통치성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에 관한 정의와 거의 유사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둘을 어긋나게 하는 지점은 흥미롭게도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데올로기-국가-장치에서 장치에만 주목하거나(이데올로기의 외재성, 객관성을 강조하는 경향) 아니면 이데올로기만을 극력 강조하는(문화연구로 대표되는 문화적 코드로서의 이데올로기를 특권화하는 경향) 논의에서 결여되어 있는 국가에 관한 알튀세르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거의 모든 현실을 사회 속에 담는 푸코와 정확히 반대의 방향에서 그를 모두 국가에 담는 알튀세르의 몸짓 사이에 극적인 대조가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비롯한 모든 사회적 제도를 국가장치라고 부를 때의 알튀세르와 국가장치를 비롯한 모든 것을 사회적인 것의 심급이라고 부르는 푸코 사이에는 기이하리만치 극명한 대조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두 이론가의 다른 방향으로 치닫는 선택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국가를 사회에 외재적인 자율적인 심급으로 가정하기를 극구 거부하며 사회적인 것의 자기반영성 속에 혹은 사회의 유물론 속에 집어넣고자 했던 푸코와 달리 알튀세르는 푸코식의 내재적 유물론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 속에서 외려 사회에 관한 보다 유물론적인 분석을 도입하려 했다고 생각한다. 간략히 말하자면 그는 국가의 허구적인 보편성을 전제하면서 혹은 국가의 이상성을 사유함으로써 혁명이라는 계기의 가능성을 사유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유물론 속에서의 관념론자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상성/보편성의 계기에 대한 사유를 배제하지 않을 때 맑스주의적 유물론이 혁명적인 유물론으로 가능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우울증적인 혹은 그것의 맞짝이라 할 쾌락주의적인 자아의 윤리학으로 나아가는 푸코에게서보다 알튀세르의 미완의 이데올로기론에서 우리가 더 많은 정치적 사유의 씨앗을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

Q.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활동은 없다. 그냥 불러 주는 자리에 크게 마다 않고 가서 아마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듯하다. 실은 나는 그냥 붙박이처럼 사는 편이다. 향후 계획이랄 것도 딱히 없다. 그간 쓴 글을 묶어 책을 내는 것, 지금 쓰고 있는 대중문화에 관한 입문서를 끝내는 것 정도가 아마 이후의 활동계획이라면 활동계획일 것이다.

2010/08/09 09:42 2010/08/09 09:42

‘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 블로그에서는 앞으로 발표자 선생님들과 진행한 서면인터뷰를 실을 예정입니다. 오늘은 첫번째로 이번 심포지엄에서 ‘알튀세르에서 발리바르로: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이라는 발표를 맡아 주신 서관모 선생님의 인터뷰를 올립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문제의식 속에서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를 접하셨는지, 또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단절점은 무엇인지 등을 잘 알려 주는 인터뷰입니다. 그리고 서관모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인터뷰와 함께 선생님의 최근 논문인 「반폭력의 문제설정과 인간학적 차이들 ― 에티엔 발리바르의 포스트마르크스적 공산주의」(『마르크스주의 연구』 제5권 제2호에 발표)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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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관모  1953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루이 알튀세르의 『철학과 맑스주의』(공역), 『철학에 대하여』(공역), 에티엔 발리바르의 『대중들의 공포』(공역), 『역사적 맑스주의』 등이 있으며, 계급 문제, 알튀세르·발리바르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






서관모 인터뷰
_ 알튀세르, 공산주의를 어떻게 인지가능하게 할 것인가?!


Q. 지금까지 어떤 연구를 해오셨는지, 현재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알튀세르적인 역사유물론 재구성 작업, 이어 그의 포스트알튀세르적인 역사유물론 및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 재구성 작업을 이해하고 소개하고자 했고, 최근에는 발리바르와 마찬가지로 맑스의 사회적 관계의 변혁의 문제설정을 견지하는 몇 안 되는 포스트맑스주의자의 하나인 네그리 등의 변혁이론의 의미와 한계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Q. 선생님은 알튀세르를 국내에 소개한, 제1세대 알튀세르 학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만큼 알튀세르와의 인연이 특별하실 것 같습니다. 처음에 선생님께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알튀세르를 연구하기 시작하셨는지, 그리고 당시에 알튀세르가 선생님의 문제의식에 던져준 빛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나는 알튀세르의 저작 일부(백승욱 교수와 공역한『철학과 맑스주의』등)를 번역하였을 뿐, 알튀세르를 연구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래 알튀세르에 대한 주요한 소개자이자 거의 유일한 연구자였다고 할 수 있는 윤소영 교수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

1980년대 초 ‘생산양식들의 절합’의 도식으로 제3세계 경제·사회 구조의 특성을 이해하려 했던 몇몇 사회학도, 인류학도들이 석사논문 수준의 작업에서 알튀세르의 이론·저작을 단편적으로 활용한 적이 있지만 알튀세르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는 윤소영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문학과 사회』, 1988년 겨울). 윤소영은 이미 1987년에 자신의 박사논문과 발리바르의 3편의 논문을 엮은 저서 『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경제(학) 비판’』(한울)을 출간하였는데, 이 박사논문의 핵심 내용은 발리바르의 1974년의 긴 논문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역사유물론 연구』, 푸른산, 1989에 수록)에 대한 평주입니다. 「잉여가치와 사회계급」은 계급에 대한 알튀세르적 관점에서 역사유물론의 한 구성부분인 정치경제학 비판의 체계를 재구성하려 한 저작이지만 기본적으로 전통 맑스주의의 틀 내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는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윤소영이 이끈 『현실과 과학』 및 서울사회과학연구소 활동 속에서 그를 통하여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페레스트로이카와 뒤이은 현실사회주의 해체라는 역사적 정세 속에서 민족주의와 개량주의에 대한 양면전선에서 싸우고자 했던 우리 그룹의 모토는 공식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레닌주의의 쇄신’이었습니다. 윤소영과 나(그리고 백승욱 등)에게 알튀세르, 발리바르는 근본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론가였습니다. 1968 혁명과 함께 정치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고와 특히 실천이 등장하기까지 프롤레타리아 독재 모델은 광의의 사회계약 모델에 대한 유일한 좌익적 대안이었습니다. 유로코뮤니즘과 페레스트로이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모델의 폐기와 사회계약 모델로의 복귀라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전개된 에피소드들입니다. 우리는 발리바르를 통하여 알튀세르를 읽었고, 70년대 말까지의 알튀세르, 발리바르의 맑스주의 개조 작업에서 유효한 맑스주의적인 혁명적 변혁의 이론 노선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러한 기대는 좌절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70년대 말부터 발리바르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기각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모델도 사회계약 모델도 아닌 새로운 정치 모델을 모색하였고, 맑스주의의 위기의 폭발을 선언한 알튀세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발리바르에게 맑스주의는 더 이상 유효하게 개조되어 계속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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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영 교수의 알튀세르 관련 작업들

Q. 선생님은 발리바르의 작업들도 활발하게 연구해 오셨습니다. 발표 주제도 ‘알튀세르와 발리바르: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입니다. 발리바르의 작업이 알튀세르 작업의 보충이라는 의미를 지닌 수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또 그와 알튀세르 사이에 단절이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를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1977년경까지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충실한 학생으로 남아 있었고, 그의 작업은 알튀세르와의 일종의 역할분담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78년에 중대한 단절이 이루어집니다. 발리바르는 1976년 프랑스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각을 결정하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민주주의와 독재』, 연구사, 1988)라는 단행본을 써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전투적으로 옹호하였습니다. 이 저작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따라서 전통 맑스주의 국가이론, 정치이론에 대한 최선의 교과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잉여가치와 사회계급」이 전통 맑스주의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도달한 최선의 지점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1978년 들어 발리바르는 맑스주의의 국가사멸의 기획(계급투쟁을 통한 계급적대 및 국가의 전진적 사멸의 기획, 요컨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획)을 고수하던 알튀세르와 결별하고, 국가사멸의 기획을 국가의 민주적 전화(변혁)의 기획으로 대체합니다. 이 결별의 내용은 사실 고유하게 알튀세르적인 어떤 것과의 결별이 아니라 맑스주의적 공산주의 기획과의 결별인데, 어쨌든 이것은 이론적·정치적으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하나의 단절이었습니다. 이 결별과 함께 발리바르는 포스트맑스주의자, 포스트알튀세리엥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리바르는 모든 맑스주의자들이 매여 있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알튀세르도 매여 있었던 국가의 종언, 정치의 종언 테제의 토대에 있는 ‘이론적 아나키즘’을 청산한 것입니다. 알튀세르는 마지막까지 ‘상품관계들의 부재, 따라서 계급적 착취관계와 국가적 지배관계의 부재’라는 공산주의에 대한 맑스적 정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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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바르(왼쪽 사진)의 새로운 정치적 기획은 1980년대의 모색을 거쳐 1990년대에 시민권 개조의 기획과 시빌리테(civilité, 시민인륜)의 정치의 기획으로 구체화됩니다(번역이 불가능한 발리바르의 ‘시빌리테’ 개념을 최원과 나는 잠정적으로 ‘시민인륜’이라 번역했지만, 원어의 함의를 표현하는 데에 이 역어가 얼마나 부족한지는 우리들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윤소영은 발리바르의 저작들을 계속 번역·소개해 왔지만, 오랫동안 1978년의 발리바르의 알튀세르와의 결별의 정치적 함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발리바르는 맑스주의는 경제적 환원주의 때문이 아니라 ‘이론적 아나키즘’ 때문에 국가를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국가와 정치는 (그리고 시민권, 시민권과 국적의 관계는) 가능한 그 어떤 맑스주의적 이론화에도 절대적 한계들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발리바르에게 국가이론, 정치이론은 맑스주의의 지반을 벗어나 새로이 구성되어야 할 영역입니다. 사회계약 모델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모델 모두를 넘어서는 국가와 정치에 대한 급진적인 새로운 이론화에서 유일하게 적합한 단일의 노선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발리바르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기보다 기존의 오래된 개념들을 개조하는 길을 택합니다. 시민권, 주권과 같은 개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맑스주의가 부르주아적인 것으로서 비판해 온 그러한 개념을 축으로 하여 정치이론을 구성한다는 것은 맑스주의자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입니다. 맑스주의적 변혁의 기획을 상대화시키는 시빌리테 개념, 시빌리테의 정치의 기획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시민권 개념과 시빌리테 개념을 축으로 하는 발리바르의 독자적인 정치이론 체계의 윤곽이 처음 제시된 것은 금년에 진태원 선생이 번역·소개한 2001년의 저작 『우리, 유럽의 시민들?』(후마니타스, 2010)입니다. 발리바르의 최근 저작들이 진태원 선생에 의해 속속 번역될 예정인데, 그의 열정적인 작업 덕분에 발리바르의 독자적인 이론작업의 전체상이 곧 지식대중에게 소개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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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와의 결별 이후의 발리바르의 작업은 알튀세르의 작업에 대한 단순한 보충이 아닙니다. 1990년대 초 이후의 발리바르의 문제설정은 맑스주의의 개조의 문제설정이 아니라 맑스주의를 넘어선 ‘정치의 개조’의 기획입니다. 참고로, 발리바르가 알튀세르를 넘어서서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해 감에 따라 윤소영은 발리바르의 이론적·정치적 진화의 핵심 부분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알튀세르적인 맑스주의의 개조 내지 전화(변형)의 문제설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만 발리바르의 작업을 취사선택하고자 합니다. 발리바르의 이론적 진화를 따라가기가 곤혹스러웠던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이론적으로 수미일관하기 어려운 취사선택보다는 발리바르의 새로운 이론 체계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금 한국에서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연다거나, 알튀세르를 재조명하는 것의 의미, 알튀세르 사유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알튀세르는 맑스주의자이기 이전에 공산주의자입니다. 발리바르가 증언하였듯이, 알튀세르에게 맑스주의적 명제의 수용 또는 기각의 기준은 공산주의적 정치를 인지가능하게 만드느냐 여부였습니다. 나는 오늘날 여전히, 아니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알튀세르의 사유가 공산주의적 정치를 유효하게 인지가능하게 만드는 데에 불가결한 철학적 자원이라 생각합니다. 알튀세르는 공산주의에 대한 맑스적 정의를 기각하지 않았지만, 목적론적이고 진화주의적인 공산주의관을 기각하였습니다. 진화주의적, 역사철학적인 사회주의적 공산주의로서의 맑스주의적 공산주의가 종언을 고한 오늘날, 공산주의를 새로이 구상하는 데에, 즉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를 구상하는 데에 알튀세르적 사유는 가장 소중한 자원의 하나입니다. 알튀세르의 사유는 공산주의 자체가 역사적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고 달라져야 함을 인지하게 해줍니다. 나는 오늘날 발리바르가 가장 중요한 공산주의 철학자라 생각하는데, 알튀세르의 작업, 사유가 없었다면 발리바르의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 구상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발리바르의 정치적 작업이 알튀세르와의 ‘단절’ 위에서 전개되어 온 반면, 그의 철학적 작업은 알튀세르의 작업에 대한 ‘보충’ 내지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새로운 구상과 관련하여 알튀세르의 사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입니다. 발리바르의 “역사 속에서의 인과성의 구조적 법칙은 다른 무대를 통한, 그리고 다른 무대를 수단으로 한 우회”라는 테제, 좀더 상세히 말해서 “이데올로기적 원인들이 갖는 효력의 원인 또는 규정은 경제적일 수밖에 없으며, 마찬가지로 오직 이데올로기적 ‘원인’ 또는 ‘구조’만이, 경제적 세력이나 이해관계가 이러저러한 사회적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해명할 수 있다”는 테제는 근본적으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 위에서 제출된 것입니다. 공산주의를 유효하게 사고하는 데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발리바르의 공산주의 구상을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을 수용하지 않는 바디우, 랑시에르, 네그리와 같은 또 다른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자들의 공산주의와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납니다. 나는 그들의 작업이 각각 공산주의적 정치를 다시 사고하는 데에서 소중한 요소들을 담고 있지만 그들의 정치적 기획이 단편적이거나(바디우, 랑시에르) 공상적인(네그리) 가장 주요한 이유가 그들이 이데올로기 개념,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을 기각한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는 맑스주의의 이론적 종별성을 구성하는 개념들의 하나이며, 이 개념의 정식화는 맑스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단절의 징표들 중의 하나입니다. 철학적으로 맑스주의의 위기는 이 개념의 위기로 요약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알튀세르는 맑스·엥엘스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을 유지하되 이데올로기 개념을 반맑스적인 것으로 변전시킴으로써 맑스주의적 공산주의 기획에 결정적인 단절을 도입합니다. 알튀세르 자신은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 단절과 더불어 공산주의 기획은 더 이상 맑스주의적인 기획에 머물 수 없게 됩니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을 수용하면서 공산주의적인, 또는 조건부로 그것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급진민주주의적인 기획을 어떻게 재활성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열려 있는 질문입니다. 시민권과 시빌리테 개념을 축으로 하는 발리바르의 작업은 그러한 길의 하나일 뿐이지만, 지금까지 그 밖의 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알튀세르의 사유의 독자성, 생산성은 그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이 알튀세르 사유의 풍부함, 그것의 현재성을 영유하는 마당을 열어 줄 것입니다.

Q.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당분간 발리바르의 2000년대의 작업을 학습하는 데에 집중하려 합니다.


2010/08/04 12:14 2010/08/04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