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 블로그에서는 앞으로 발표자 선생님들과 진행한 서면인터뷰를 실을 예정입니다. 오늘은 첫번째로 이번 심포지엄에서 ‘알튀세르에서 발리바르로: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이라는 발표를 맡아 주신 서관모 선생님의 인터뷰를 올립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문제의식 속에서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를 접하셨는지, 또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단절점은 무엇인지 등을 잘 알려 주는 인터뷰입니다. 그리고 서관모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인터뷰와 함께 선생님의 최근 논문인 「반폭력의 문제설정과 인간학적 차이들 ― 에티엔 발리바르의 포스트마르크스적 공산주의」(『마르크스주의 연구』 제5권 제2호에 발표)을 싣습니다.
서관모 1953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루이 알튀세르의 『철학과 맑스주의』(공역), 『철학에 대하여』(공역), 에티엔 발리바르의 『대중들의 공포』(공역), 『역사적 맑스주의』 등이 있으며, 계급 문제, 알튀세르·발리바르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
서관모 인터뷰
_ 알튀세르, 공산주의를 어떻게 인지가능하게 할 것인가?!Q. 지금까지 어떤 연구를 해오셨는지, 현재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에티엔 발리바르의 알튀세르적인 역사유물론 재구성 작업, 이어 그의 포스트알튀세르적인 역사유물론 및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 재구성 작업을 이해하고 소개하고자 했고, 최근에는 발리바르와 마찬가지로 맑스의 사회적 관계의 변혁의 문제설정을 견지하는 몇 안 되는 포스트맑스주의자의 하나인 네그리 등의 변혁이론의 의미와 한계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Q. 선생님은 알튀세르를 국내에 소개한, 제1세대 알튀세르 학자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만큼 알튀세르와의 인연이 특별하실 것 같습니다. 처음에 선생님께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알튀세르를 연구하기 시작하셨는지, 그리고 당시에 알튀세르가 선생님의 문제의식에 던져준 빛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나는 알튀세르의 저작 일부(백승욱 교수와 공역한『철학과 맑스주의』등)를 번역하였을 뿐, 알튀세르를 연구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래 알튀세르에 대한 주요한 소개자이자 거의 유일한 연구자였다고 할 수 있는 윤소영 교수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
1980년대 초 ‘생산양식들의 절합’의 도식으로 제3세계 경제·사회 구조의 특성을 이해하려 했던 몇몇 사회학도, 인류학도들이 석사논문 수준의 작업에서 알튀세르의 이론·저작을 단편적으로 활용한 적이 있지만 알튀세르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는 윤소영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알튀세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문학과 사회』, 1988년 겨울). 윤소영은 이미 1987년에 자신의 박사논문과 발리바르의 3편의 논문을 엮은 저서 『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경제(학) 비판’』(한울)을 출간하였는데, 이 박사논문의 핵심 내용은 발리바르의 1974년의 긴 논문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 정치경제학 비판 서설」(『역사유물론 연구』, 푸른산, 1989에 수록)에 대한 평주입니다. 「잉여가치와 사회계급」은 계급에 대한 알튀세르적 관점에서 역사유물론의 한 구성부분인 정치경제학 비판의 체계를 재구성하려 한 저작이지만 기본적으로 전통 맑스주의의 틀 내에 머물러 있습니다.
나는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윤소영이 이끈 『현실과 과학』 및 서울사회과학연구소 활동 속에서 그를 통하여 알튀세르와 발리바르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페레스트로이카와 뒤이은 현실사회주의 해체라는 역사적 정세 속에서 민족주의와 개량주의에 대한 양면전선에서 싸우고자 했던 우리 그룹의 모토는 공식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레닌주의의 쇄신’이었습니다. 윤소영과 나(그리고 백승욱 등)에게 알튀세르, 발리바르는 근본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론가였습니다. 1968 혁명과 함께 정치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고와 특히 실천이 등장하기까지 프롤레타리아 독재 모델은 광의의 사회계약 모델에 대한 유일한 좌익적 대안이었습니다. 유로코뮤니즘과 페레스트로이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 모델의 폐기와 사회계약 모델로의 복귀라는 역사적 과정 속에서 전개된 에피소드들입니다. 우리는 발리바르를 통하여 알튀세르를 읽었고, 70년대 말까지의 알튀세르, 발리바르의 맑스주의 개조 작업에서 유효한 맑스주의적인 혁명적 변혁의 이론 노선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러한 기대는 좌절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70년대 말부터 발리바르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기각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 모델도 사회계약 모델도 아닌 새로운 정치 모델을 모색하였고, 맑스주의의 위기의 폭발을 선언한 알튀세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발리바르에게 맑스주의는 더 이상 유효하게 개조되어 계속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Q. 선생님은 발리바르의 작업들도 활발하게 연구해 오셨습니다. 발표 주제도 ‘알튀세르와 발리바르: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입니다. 발리바르의 작업이 알튀세르 작업의 보충이라는 의미를 지닌 수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또 그와 알튀세르 사이에 단절이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를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1977년경까지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충실한 학생으로 남아 있었고, 그의 작업은 알튀세르와의 일종의 역할분담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78년에 중대한 단절이 이루어집니다. 발리바르는 1976년 프랑스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각을 결정하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민주주의와 독재』, 연구사, 1988)라는 단행본을 써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전투적으로 옹호하였습니다. 이 저작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따라서 전통 맑스주의 국가이론, 정치이론에 대한 최선의 교과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잉여가치와 사회계급」이 전통 맑스주의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도달한 최선의 지점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1978년 들어 발리바르는 맑스주의의 국가사멸의 기획(계급투쟁을 통한 계급적대 및 국가의 전진적 사멸의 기획, 요컨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획)을 고수하던 알튀세르와 결별하고, 국가사멸의 기획을 국가의 민주적 전화(변혁)의 기획으로 대체합니다. 이 결별의 내용은 사실 고유하게 알튀세르적인 어떤 것과의 결별이 아니라 맑스주의적 공산주의 기획과의 결별인데, 어쨌든 이것은 이론적·정치적으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하나의 단절이었습니다. 이 결별과 함께 발리바르는 포스트맑스주의자, 포스트알튀세리엥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리바르는 모든 맑스주의자들이 매여 있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알튀세르도 매여 있었던 국가의 종언, 정치의 종언 테제의 토대에 있는 ‘이론적 아나키즘’을 청산한 것입니다. 알튀세르는 마지막까지 ‘상품관계들의 부재, 따라서 계급적 착취관계와 국가적 지배관계의 부재’라는 공산주의에 대한 맑스적 정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발리바르(왼쪽 사진)의 새로운 정치적 기획은 1980년대의 모색을 거쳐 1990년대에 시민권 개조의 기획과 시빌리테(civilité, 시민인륜)의 정치의 기획으로 구체화됩니다(번역이 불가능한 발리바르의 ‘시빌리테’ 개념을 최원과 나는 잠정적으로 ‘시민인륜’이라 번역했지만, 원어의 함의를 표현하는 데에 이 역어가 얼마나 부족한지는 우리들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윤소영은 발리바르의 저작들을 계속 번역·소개해 왔지만, 오랫동안 1978년의 발리바르의 알튀세르와의 결별의 정치적 함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나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발리바르는 맑스주의는 경제적 환원주의 때문이 아니라 ‘이론적 아나키즘’ 때문에 국가를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국가와 정치는 (그리고 시민권, 시민권과 국적의 관계는) 가능한 그 어떤 맑스주의적 이론화에도 절대적 한계들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발리바르에게 국가이론, 정치이론은 맑스주의의 지반을 벗어나 새로이 구성되어야 할 영역입니다. 사회계약 모델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모델 모두를 넘어서는 국가와 정치에 대한 급진적인 새로운 이론화에서 유일하게 적합한 단일의 노선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발리바르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기보다 기존의 오래된 개념들을 개조하는 길을 택합니다. 시민권, 주권과 같은 개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맑스주의가 부르주아적인 것으로서 비판해 온 그러한 개념을 축으로 하여 정치이론을 구성한다는 것은 맑스주의자들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입니다. 맑스주의적 변혁의 기획을 상대화시키는 시빌리테 개념, 시빌리테의 정치의 기획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시민권 개념과 시빌리테 개념을 축으로 하는 발리바르의 독자적인 정치이론 체계의 윤곽이 처음 제시된 것은 금년에 진태원 선생이 번역·소개한 2001년의 저작 『우리, 유럽의 시민들?』(후마니타스, 2010)입니다. 발리바르의 최근 저작들이 진태원 선생에 의해 속속 번역될 예정인데, 그의 열정적인 작업 덕분에 발리바르의 독자적인 이론작업의 전체상이 곧 지식대중에게 소개될 것입니다.

알튀세르와의 결별 이후의 발리바르의 작업은 알튀세르의 작업에 대한 단순한 보충이 아닙니다. 1990년대 초 이후의 발리바르의 문제설정은 맑스주의의 개조의 문제설정이 아니라 맑스주의를 넘어선 ‘정치의 개조’의 기획입니다. 참고로, 발리바르가 알튀세르를 넘어서서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해 감에 따라 윤소영은 발리바르의 이론적·정치적 진화의 핵심 부분을 전면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알튀세르적인 맑스주의의 개조 내지 전화(변형)의 문제설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만 발리바르의 작업을 취사선택하고자 합니다. 발리바르의 이론적 진화를 따라가기가 곤혹스러웠던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나는 이론적으로 수미일관하기 어려운 취사선택보다는 발리바르의 새로운 이론 체계를 전면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금 한국에서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연다거나, 알튀세르를 재조명하는 것의 의미, 알튀세르 사유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알튀세르는 맑스주의자이기 이전에 공산주의자입니다. 발리바르가 증언하였듯이, 알튀세르에게 맑스주의적 명제의 수용 또는 기각의 기준은 공산주의적 정치를 인지가능하게 만드느냐 여부였습니다. 나는 오늘날 여전히, 아니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알튀세르의 사유가 공산주의적 정치를 유효하게 인지가능하게 만드는 데에 불가결한 철학적 자원이라 생각합니다. 알튀세르는 공산주의에 대한 맑스적 정의를 기각하지 않았지만, 목적론적이고 진화주의적인 공산주의관을 기각하였습니다. 진화주의적, 역사철학적인 사회주의적 공산주의로서의 맑스주의적 공산주의가 종언을 고한 오늘날, 공산주의를 새로이 구상하는 데에, 즉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를 구상하는 데에 알튀세르적 사유는 가장 소중한 자원의 하나입니다. 알튀세르의 사유는 공산주의 자체가 역사적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고 달라져야 함을 인지하게 해줍니다. 나는 오늘날 발리바르가 가장 중요한 공산주의 철학자라 생각하는데, 알튀세르의 작업, 사유가 없었다면 발리바르의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 구상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발리바르의 정치적 작업이 알튀세르와의 ‘단절’ 위에서 전개되어 온 반면, 그의 철학적 작업은 알튀세르의 작업에 대한 ‘보충’ 내지 확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새로운 구상과 관련하여 알튀세르의 사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입니다. 발리바르의 “역사 속에서의 인과성의 구조적 법칙은 다른 무대를 통한, 그리고 다른 무대를 수단으로 한 우회”라는 테제, 좀더 상세히 말해서 “이데올로기적 원인들이 갖는 효력의 원인 또는 규정은 경제적일 수밖에 없으며, 마찬가지로 오직 이데올로기적 ‘원인’ 또는 ‘구조’만이, 경제적 세력이나 이해관계가 이러저러한 사회적 효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해명할 수 있다”는 테제는 근본적으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 위에서 제출된 것입니다. 공산주의를 유효하게 사고하는 데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발리바르의 공산주의 구상을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을 수용하지 않는 바디우, 랑시에르, 네그리와 같은 또 다른 포스트맑스적 공산주의자들의 공산주의와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납니다. 나는 그들의 작업이 각각 공산주의적 정치를 다시 사고하는 데에서 소중한 요소들을 담고 있지만 그들의 정치적 기획이 단편적이거나(바디우, 랑시에르) 공상적인(네그리) 가장 주요한 이유가 그들이 이데올로기 개념,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을 기각한 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데올로기는 맑스주의의 이론적 종별성을 구성하는 개념들의 하나이며, 이 개념의 정식화는 맑스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단절의 징표들 중의 하나입니다. 철학적으로 맑스주의의 위기는 이 개념의 위기로 요약된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알튀세르는 맑스·엥엘스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을 유지하되 이데올로기 개념을 반맑스적인 것으로 변전시킴으로써 맑스주의적 공산주의 기획에 결정적인 단절을 도입합니다. 알튀세르 자신은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 단절과 더불어 공산주의 기획은 더 이상 맑스주의적인 기획에 머물 수 없게 됩니다.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을 수용하면서 공산주의적인, 또는 조건부로 그것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급진민주주의적인 기획을 어떻게 재활성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열려 있는 질문입니다. 시민권과 시빌리테 개념을 축으로 하는 발리바르의 작업은 그러한 길의 하나일 뿐이지만, 지금까지 그 밖의 시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알튀세르의 사유의 독자성, 생산성은 그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설정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이 알튀세르 사유의 풍부함, 그것의 현재성을 영유하는 마당을 열어 줄 것입니다.
Q.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당분간 발리바르의 2000년대의 작업을 학습하는 데에 집중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