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김정한 선생님의 인터뷰을 올립니다. 김정한 선생님은 이번 심포지엄에서 ‘알튀세르와 포스트맑스주의’라는 주제의 발표를 맡아 주실 예정입니다. 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를 중심으로 한 포스트맑스주의는 알튀세르 사상의 일부 측면을 계승하고, 나아가 그 측면을 더욱더 밀고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정한 선생님의 발표와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 측면이 무엇인지 좀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김정한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선생님 문제의식의 일단을 보여 주는 논문, 「어네스토 라클라우: 적대와 헤게모니」라는 논문을 함께 싣습니다.

관련 글
어네스토 라클라우 : 적대와 헤게모니
김정한 인터뷰
'맑스 효과'는 '알튀세르 효과'로 대체, 보충되어야 한다
Q. 알튀세르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계신지,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래 접고 있던 ‘서강정치철학연구회’ 세미나를 몇 달 전에 다시 시작했다. 친구가 많이 도와 줘서 아감벤의 책들을 조금씩 읽었고, 지금은 발리바르의 신간인 『우리, 유럽의 시민들?』을 읽고 있다. 앞으로 ‘현대 민주주의 정치철학’이라는 느슨한 제목으로 다양한 지적 흐름들을 따라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젝의 책들을 늘 재밌게 읽어서 ‘난곡연구소’ 세미나에도 다녔는데, 이상하게 세미나가 있는 날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자꾸 생겨 지금은 당분간 쉬고 있다.
Q.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알튀세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또는 알튀세르를 처음 공부할 당시의 느낌 같은 것들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돌아가신 고(故) 정운영 선생의 경제학 수업을 대학 2학년(1990년) 때 수강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사실 ‘정운영’이 누군지 잘 몰랐고, 가까운 선배들의 강력한 추천에 호기심이 생겨서 들었던 것 같다. 정운영 선생의 ‘카리스마’는 단단했고 강의가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나는 뭔가 계속 헤매고 있었는데, 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 “아, 맑스주의가 이런 거구나” 하는 최초의 깨달음이 있었고 매우 놀라웠다. 다른 과목들처럼 형편없는 학점을 받았지만, 그해 겨울부터 맑스주의에 관한 책들을 좀 본격적인 느낌으로 읽게 되었는데, 당시에 맑스주의를 공부하면서 알튀세르를 만나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곧 믿음직한 선배가 이끄는 세미나에 들어갔고 레닌과 함께 알튀세르를 접하게 되었다. 물론 어려웠고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몇몇 글들의 일부는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듯이 명쾌했으며 무엇보다 뛰어난 논리가 감탄스러웠다.
Q. 지금 한국에서 알튀세르 심포지엄을 연다거나, 알튀세르를 재조명하는 것의 의미, 알튀세르 사유의 현재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알튀세르 사후 20주년에 특별한 의미는 없을 테고, 어쩌면 심포지엄을 여는 일 자체가 어떤 새로운 의미를 형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세계 자본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맑스가 유행처럼 불려나오는 시기가 있는데, 2007~2009년 금융위기 때에도 그랬다. 이를테면 ‘맑스 효과’가 일어나는 정세가 있다. 그러나 알튀세르가 선언했던 ‘맑스주의의 위기’는 아직 돌파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고, 이 때문에 ‘맑스 효과’가 단순히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것으로 귀결한다면 별로 긍정적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맑스 효과’는 ‘알튀세르 효과’로 대체보충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알튀세르는 역사적 맑스주의의 주요 교차로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순수하고 진정한 맑스(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알튀세르를 재조명하고 역사적 맑스주의를 재성찰함으로써 ‘맑스주의의 위기’를 돌파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Q. 발표 주제가 ‘알튀세르와 포스트맑스주의’입니다. ‘포스트맑스주의’란 얼핏 모호한 범주처럼 보이는데,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포스트맑스주의’의 공통적 특징은 무엇인지, 그리고 ‘포스트맑스주의’는 알튀세르의 어떤 측면을 계승했고, 어떤 측면에서 그와 갈라지는지 궁금합니다.
어디선가 알튀세르는 철학함이란 ‘구획선 긋기’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정치와 과학(이론) 사이에서 어떻게 구획선을 긋느냐에 따라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포스트맑스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는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쓴 라클라우와 무페인데, 그 바탕에는 알튀세르의 ‘과잉결정’ 개념이 놓여 있다. 말하자면 포스트맑스주의는 알튀세르가 그은 수많은 구획선들 중에서 하나를 쭉 밀고 나간 셈이다. 라클라우와 무페는 과잉결정 개념을 가공하여 반본질주의를 내세우고, 이를 통해 계급주의, 국가주의, 경제주의, 중앙집중식 혁명론 등을 비판하면서, 다양한 신사회운동들을 등가적으로 결합하는 지속적인 민주화 과정(진지전)을 제창한다. 이것이 (계급투쟁이 아니라) 헤게모니투쟁으로 이루어지는 ‘다원적 급진민주주의 전략’이다. 여기서 고전적 맑스주의의 핵심적인 운동세력인 노동자계급, 노동자운동은 더 이상 특권적인 위상을 갖지 않는다. 물론 알튀세르라면 이런 전략을 전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지젝은 라클라우를 비판하면서 계급투쟁의 예외성(중심성?)을 다시 주장하는데, 이는 알튀세르의 ‘최종심급에서의 경제 결정’ 개념을 다른 방식으로 쭉 밀고 나가는 인상을 준다. 이런 쟁점들을 이해하려면 알튀세르의 문제의식과 그가 그어 놓은 구획선들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Q.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당분간 세미나에 집중하면서 저 멀리 앞서가는 이론적 정세를 뒤좇으려 한다. 그리고 아직 구상에 불과하지만, 온·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세미나 팀들과 일상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일종의 ‘포털 블로그’를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세미나연합’(seminar association)이라는 화두를 갖고 내가 속해 있는 모임들에서 틈나는 대로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사는 게 바쁘고 몸이 느려서 진척이 더디다. 약 10년 전에 ‘91년 5월 투쟁 10주년’을 함께 준비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일종의 동인처럼 모여 있는 ‘대안지식연구회’에서 몇 년 전에 ‘지식인의 현장 ― 세미나를 찬양함’이라는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꼭 그처럼 살 수는 없어도 대략 비슷하게는 살려고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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