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문제’라는 발표를 맡아 주신 진태원 선생님의 인터뷰를 올립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진태원 선생님은 그간 알튀세르, 발리바르, 데리다 등 대표적인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의 저작을 더 이상은 불가능할 정도의 엄격함을 가지고 번역·소개해 오신 연구자이시며, 또한 이번 심포지엄의 기획자이기도 하십니다. 앞으로도 무시무시한(^^;) 번역서들 및 저서들을 꾸준히 출간하실 예정인데, 이 인터뷰를 통해 선생님의 향후 계획, 알튀세르와의 만남, 오늘날 ‘죽은 개’ 취급을 받는 변증법과 알튀세르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등을 알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인터뷰와 더불어 선생님의 글 두 편, 「마르크스주의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캉귈렘-스피노자」을 함께 싣습니다.

관련 글 마르크스주의에서 과학과 이데올로기: 알튀세르-캉귈렘-스피노자
진태원 인터뷰
알튀세르, 헤겔 변증법과 맑스 변증법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Q. 지금까지 어떤 연구를 해오셨는지, 현재 어떤 연구(활동)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해온 연구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연구였는데, 조만간 박사학위 논문과 그동안 스피노자에 관해 썼던 논문집이 출간되면서 잠정적인 결산이 이루어질 것 같다. 둘째는 알튀세르와 알튀세리엥들에 대한 연구다. 지금까지 공부를 해오면서 가장 많은 지적인 빚을 지고 있는 철학자가 알튀세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심포지엄과 공동 논문집 출간, 『『자본』을 읽자』의 번역, 그리고 내년쯤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알튀세르에 관한 책 등을 통해 얼마간 그 빚을 갚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은 데리다를 비롯한 해체론에 관한 연구다. 지금까지는 주로 데리다의 저서들을 번역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몇 가지 글을 써볼 생각이다.
현재 제일 몰두하고 있는 작업은 발리바르를 비롯한 현대 정치철학자들의 저서를 번역하고 연구하는 일이다. 발리바르의 『우리, 유럽의 시민들?』이 지난 5월 출간됐고, 『정치체에 대한 권리』와 『폭력과 시빌리테』도 곧 나올 예정이다. 랑시에르의 『불화』도 번역이 거의 끝나가고 있기 때문에 늦어도 올해 안에는 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린비 출판사에서 내는 ‘프리즘 총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도 현재 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좋은 책은 많은데 막상 능력 있는 옮긴이를 구하기는 쉽지 않고, 국내 필자의 좋은 원고를 발굴하기는 더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사정이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 밖에 몇 가지 소소한 작업들이 더 있는데, 여기서 굳이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Q.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서 알튀세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또는 알튀세르를 처음 공부할 당시의 느낌 같은 것들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알튀세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1989년)였다. 그 전까지는 구조주의 철학자, 역사를 부정하고 주체를 제거한 철학자라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당시에는 헤겔을 비롯한 헤겔 맑스주의 철학자들(루카치, 마르쿠제 등)의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이런 악명을 지닌 철학자의 책을 굳이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알튀세르를 읽게 된 계기는 그 당시 번역된 발리바르의 『역사유물론 연구』를 인상적으로 읽게 된 이후다. 이 책은 당시의 나에게는 이를테면 하나의 계시와도 같은 책이었다. 발리바르의 이 책은 헤겔 맑스주의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웠던 맑스주의 역사의 이런저런 측면들을 이해하게 해주었고, 맑스 및 맑스주의가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었다. 제자의 책을 감동 깊게 읽었으니 당연히 스승의 책들이 궁금해졌고, 그래서 당시에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영역본 책들을 구해 읽게 되었다. 그리고 알튀세르에 관한 이런저런 소문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또 당시는 데리다가 마약중독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문(회의주의자, 상대주의자, 개인주의자, 20세기의 소피스트 같은 식의 언급들은 말할 것도 없고)이 국내 학계 및 대학 사회에 제법 그럴듯한 사실로 회자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알튀세르와 거의 비슷한 시기(1990년)에 데리다를 처음 읽게 되었는데, 이런 소문 역시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지금도 이런저런 이론가나 사상가에 대한 소문이나 저널리즘식 평가는 거의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Q. 발표 주제가 ‘알튀세르와 변증법’입니다. 일반적으로 알튀세르는 헤겔의 변증법과 맑스의 변증법을 세심하게 구분하려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생님이 주목하시는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관계, 혹은 ‘알튀세르의 변증법’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관계, 혹은 ‘알튀세르의 변증법’이란 무엇인지” 설명하려면 논문 한 편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니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만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알튀세르 사상의 핵심 중 하나는, 질문에서 말했듯이 헤겔의 변증법과 맑스의 변증법을 구별하는 것이었으며, 이 주제가 중요한 만큼 그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번 심포지엄에서 이 주제를 다루려고 하는 까닭은 우선 변증법이라는 주제가 이제는 거의 ‘죽은 개’ 취급을 받는 상황이 적지 않게 불편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은 사회적 갈등과 적대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이론틀 중 하나다. 따라서 변증법보다 더 낫거나 적어도 그것을 대체할 만한 이론틀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사회적 갈등이나 적대에 대한 설명을 어렵게 하거나 아니면 매우 빈곤하게 할 수 있다.
둘째, 변증법에 대한 알튀세르의 관점은 초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동일하게 남아 있지 않았으며, 이러한 관점의 변화, 또는 상이한 관점들의 경합 내지 교차는 알튀세르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의미 있는 쟁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가령 변증법에 대한 알튀세르의 관점과 말년의 불확실성의 유물론 내지 마주침의 유물론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번 던져 볼 수 있다.
Q. 선생님은 현재 알튀세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자본』을 읽자』를 번역하고 계십니다. 출간된 지 40년이 지난 이 책이 갖는 현재성이 있다면, 혹은 알튀세르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성을 지니고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지 알고 싶습니다.
『『자본』을 읽자』는 알튀세르 철학을 대표하는 저작 중 하나다. 이 책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자본』에 관한 가장 깊이 있는 연구 중 하나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이 출간된 지 14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이 책은 『자본』을 이해하는 데서 여전히 필수적인 참고 문헌으로 남아 있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성격과 한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자본』을 읽자』는 자본주의를 좀더 깊이 있게 사고하고 분석하기 위한 지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을 읽자』의 또 다른 의미는 중요한 철학책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책은 『자본』을 철학적으로 사고하려는 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에 속한다. 『자본』을 철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것은 『자본』에서 사용된 주요 범주들을 분석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자본』에 함축된 여러 철학적 주제, 가령 가치, 물신숭배, 역사성, 주체화, 사회성, 변증법, 공산주의 같은 주제들에 대한 탐구를 뜻할 수도 있다. 『『자본』을 읽자』의 중요성은 주요 범주들에 대한 분석이나 철학적 주제에 대한 주석에 그치지 않고 맑스의 『자본』의 기획을 맑스주의적으로 좀더 심화하고 정정·발전시키려고 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20세기 전반기에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이 있었다면, 20세기 후반기에는 『『자본』을 읽자』가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루카치가 없었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나 그 밖의 다른 비판 맑스주의가 존재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알튀세르와 『『자본』을 읽자』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상계를 주름잡는 여러 이론가들, 가령 랑시에르, 바디우, 발리바르, 지젝, 네그리, 라클라우와 무페 등과 같은 사람들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본』을 읽자』의 의의는 이런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Q. 향후 어떤 연구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1번에서 말했던 작업 이외에 두어 가지 저술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하나는 데리다 철학을 유물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해체라는 유물론』이라는 저서를 쓰는 계획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현대 정치 이론들을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해 보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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